<다크나이트>의 위용 때문이었는지, 깜빡하고 있었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영화 <인셉션>을 보며 떠올랐다. 이 사람, <메멘토>를 연출했던 감독이다! 2001년,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독특한 설정으로 기억의 정체를 파헤쳤던 바로 그 걸작 <메멘토> 말이다!
불면과 몽환의 경계 사이에서 독특한 긴장감을 선사했던 <인썸니아>(2002)까지 기억해 낸다면, 이제 우리는 <배트맨 비긴즈>(2005)와 <다크 나이트>(2008)를 통해 슈퍼 히이로의 어두운 내면으로 들어갔다가 이번 작품 <인셉션>에 도달한, 그의 영화적 여정을 관통하는 어떤 궤적의 단면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겠다.
말하자면, 그는 인간 심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 어쩌면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 즉 기억과 꿈, 그리고 무의식의 세계를 담아내는 데 무진장 관심이 많은 자라는 얘기가 되겠다.
영화 <인셉션> 시사 후기의 서두를 이렇게 떼고 나니, 읽는 이에 따라선 이런 뜨악한 반응이 나올 법도 하다. "뭐야, 이거! 오락영화 아니었어?"
맞다. <인셉션>은 명백히 오락영화다. 그것도 아주 현란한 액션으로 점철된 스펙터클 오락영화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도 기억해야 한다. 그의 전작이자 뭔가 이상야릇한 슈퍼 히어로 영화 <다크 나이트>가 오락영화의 외피 안에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얼마나 흥미로운 성찰을 담아내고 있었는지.
그렇게 이 재능 넘치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아무 생각 없이 꿍꽝대는 저 숱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찌끄레기들로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인셉션>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한다. 꿈 속의 꿈, 그 꿈 속의 꿈 속의 꿈까지 탐험하며 무의식의 근저에 도달한다는 상상을 대관절 누가 이렇게 흥미롭고도 맛깔난 모험 오락영화로 담아낼 수 있겠냔 말이다. 프로이트가 살아 있다면 놀란에게 큰절이라도 올릴 일이다.
상찬은 여기까지. 줄거리는 포털 찾아보시고, 담고 있는 철학적 함의 따위는 영화가 개봉한 뒤 논하는 게 낫겠다. 다만, <인셉션>에 단순한 오락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무의식의 조작'이라는 키워드에 주의를 기울여 보면 좋을 것 같다.
인간의 무의식에 새겨진 근원적 상처가 어떤 추악함을 만들어내는가, 라는 질문은, 이를테면 역시 디카프리오가 주연했던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 같은 영화에서 잘 제시한 바 있다. 이 영화는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무의식의 소유권은 온전히 우리에게 있는가, 라는 질문 하나를 더 보탠다.
그러니까 무의식의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외부 세계의 통제 시스템과 무의식과의 관계. 내가 인식하는 세계가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인식의 뿌리 깊은 곳에 깔려 있는 무의식 역시 과연 진짜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어쩌면 보고자 하는 세계만 보고 싶어하는 우리의 습성을 이용해 누군가 당신의 무의식조차 지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도전적 가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