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참가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작품이 이숙경 감독의 영화 '어떤 개인 날'이었다. 별 기대없이 뽑아 든 카드였건만, 용케도 '블랙잭'이 떨어졌다.
영화의 시작은 '지리멸렬' 그 자체. 누군가의 엿보기처럼 조금은 어리숙한 카메라 워킹을 따라, 이마에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한 여성이 등장한다. 택배기사와의 주차시비와 딸과의 기싸움이 연달아 이어질 때만해도 참을 만 했다. 곧이어, 출판사 사장과의 마찰이 이어지고, 카메라가 운전석 유리창에 붙은 주차위반 딱지에 이르는 순간, 나는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을 느껴야 했다. 출입구 없이 꽉 막힌 한증막에 갖힌 느낌이랄까, 오죽했으면, 여차하면 극장을 뛰쳐 나가려고 가방을 움켜 쥐었을까?
만약, 영화 초반 10분이 어색한 영상문법을 통로로 주인공의 고단함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이하려는 '의도적 연출'이라면, 이숙경 감독은 상당히 노련한 솜씨를 갖춘 '꾼'일게다. 주인공 '보영'의 짜증은, 이땅에서 '이혼녀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본능적 웅크리기'로 인해 얻어진 상처에서 비롯됐다. '보영'의 그늘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부터 발현되어, 모든 사회적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어 버린 듯 보인다.
영화 '어떤 개인 날'의 영문 제목은 'The day after'. 우연하게도,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핵폭발의 참상과 낙진으로 고통받는 인류의 모습을 그렸던 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와 같은 제목이다. 영화가 그려내는 이혼녀 '보영'의 삶은, 낙진에 시달리며 피폐해져 가던 '그날 이후'의 그들과 닮았다. 의도했건 아니건, 영화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녀들이, 핵전쟁이후, 방사능에 오염된 '공기'와 싸우는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울버린의 가위손마저도 무력화 시킬 만한 질펀한 '사투리 신공'을 펼치는 그녀가 등장하기 전 까지는.
주인공 '보영'과 우연히 한 방을 쓰게 된 나이 어린 이혼 선배인 '정남'은 천상 '전라도 아짐'이다. 자신의 상처와 욕망을 가감없이 '오리지널' 전라도 사투리로 토해내는 그녀 역시, '보영'처럼 한동안 짓눌린 삶을 살았단다. 아프지 않다고, 힘들지 않다고 폼 잡아봐야 소용이 없더란다. 그래서, 그녀는 남김없이 토해낸다. 누구에게든 아프다고 외치고, 슬프다고 훌쩍인다. 가식과 위선을 겹겹히 덧입은 '서울 다마내기'들과는 다른 삶이다. 그래서, 조금은 촌스럽고, 약간은 덜떨어져 보인다. 전라도 어느 장터에서든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아짐'들 처럼. 이숙경 감독은 전라도 아짐 '정남'을 통해, 드러내라고, 외치라고 권한다. 감추고 아닌 척 해봐야 몇 거플 벗겨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정남'을 연기한 배우 지정남은 전라도에서 '말바우 아짐'으로 통한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운전을 하고, 그녀의 공연을 보며 박장대소 했으며, 한 때는 그녀를 MC로 캐스팅해 TV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 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한참 동안이나 스크린 속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영화의 러닝타임중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30여 분 간, 주인공 '보영'의 가슴을 뒤흔들고, 관객들의 꽉 막힌 가슴을 단번에 뚫어낸 그녀가 '말바우 아짐'이라는 사실을 관객과의 대화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가 스크린에서 전라도 곡성 장터 어딘가에서 막 올라온 '아짐'처럼 천연덕스럽게 뛰논 탓이다.
마치 마당극처럼 배우 지정남은 손짓 하나, 목소리 톤 하나로, 어둠속에 파묻힌 관객을 스크린으로 감아 올리는 '신끼'를 발휘한다. 흔한 수식어인 '발견'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송강호의 등장이 '천둥'이었다면, 영화 '어떤 개인 날'의 지정남은 '번개'다. 어쩌면 배우 지정남이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니 한국영화계 최고의 수확일 지도 모른다. 나는 여지껏 지정남만큼 '오리지널'의 쾌감을 선사하는 여배우를 만난 적이 없으니까. 부디 많은 분들이 극장에서 내 주장의 진위를 확인해 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