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행사비의 실체

음악 이야기 2008/08/02 17:57 Posted by PD the ripper
연예인들의 행사비가 화제인 모양이다. 일반인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거액을, 노래 몇 곡 부르고 챙긴다고 하니, 누군가는 혀를 내두르고, 누군가는 화를 낸다. 그런데, 최근 연예인 행사비에 대한 다양한 얘기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받는 자'에 관한 얘기 뿐이다. 본디, 거래란 '주는 자'가 있어야 '받는 자'가 있기 마련인데, '주는 자'에 대한 얘기가 없다. 누가, 왜 그런 거액을  주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연예인들의 행사 출연료 내역을 다룬 기사보기

또 하나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왜 그런 거액의 행사비가 책정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사실, 업자(?)들의 공정가(?)로 비춰볼 때, 4000만원을 넘는 신정환의 행사비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으나, 검찰이 밝힌 다른 연예인들의 행사 출연료는 업계의 통상 출연료에 중개 수수료(?)를 더한 정도의 수준이고 보면, 기사가 언급한 출연료는 사실에 가깝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다시 말해, 수백, 수천만 원에 달하는 행사 출연료가 결코 '뻥'이 아니란 말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많은 행사비를 가수들에게 지급하게 됐을까?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 거액의 출연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른바 '밤업소'의 경우, 어떤 가수가 출연하느냐에 따라 적게는 그날 하루 수입, 많게는 한 달 수입이 달라지니, 이익이 남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얼마든지 거액을 배팅한다. 사실, 이 부분은 일종의 사적인 거래에 해당하고, 투자의 영역인 바, 연예인들이 얼마의 출연료를 받건 상관할 바가 못된다. 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열리면서도, 만만치 않은 출연료를 보장해주는 지역축제는 조금 다르다. 자금의 출처가 국민의 세금이니, 조목조목 따져야 할 필요충분 조건을 갖췄다고 봐도 된다.

기획예산처의 자료에 따르면, 지방자치제 실시 이전, 300여개에 불과했던 지역축제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무려 4배가 늘어나, 한 해에만 1200여개의 지역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축제를 선거 홍보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시장, 군수들 덕분에, 가수들이 거액의 출연료를 '땡길' 수 있는 무대가 1200여개로 늘었다는 뜻이다.

보통 소규모 지역축제는 2~3명의 가수를 무대에 올리고, 규모가 큰 경우에는 10여명 이상이 무대에 선다. 이때, 출연료 책정기준은 인기도가 최우선 고려 사항이고, 두 번째 변수는 '겹치기 출연'이 가능한 지역인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진다. 업계 관행상 서울에서 멀어질 수록 출연료가 높아지는 데, 그 기준점이 바로 대전이다. 따라서, 대전 아래 지역은 2배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게 되는데, 당연하게도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비싸다.

출연료 액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기나 위치, 행사 주최측과의 친분관계, 공중파 방송여부에 따라 달라지는데, 업자용어로 '아다마'라 불리는 특A급 가수들이 보통 1,500~2,000만원, '아이돌'은 1,000~1200만원 내외, 잘나가는 A급 트로트 가수는 700~1,000만 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는다. 물론, 비슷한 급의 가수라도 전략에 따라 출연료가 달라진다. '박리다매형 가수'는 조금 저렴한 출연료를 책정해,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가리지 않고 무대에 서기도 하고, 자주 출연하지 않는 대신, 희소성을 내세워 조금 더 많은 출연료를 요구하는 가수도 있으니, 위에 제시한 금액의 출연료가 모두 다 들어맞는 건 아니다. 다만,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 지난 10년간 지역축제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가수들의 출연료 역시, 그에 비례해 가파르게 상승한 것만은 사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00여개에 달하는 지역축제가 거의 모두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것도 행사 출연료의 상승을 부추겼다. 꽃과 관련된 축제는 거의 대부분 4월 말에서 5월 초에 몰려있고, 여름철 관광지 축제는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 과실류 축제는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집중적으로 벌어진다. 가뜩이나 축제의 흥을 돋궈줄 만한 가수들이 부족한 판국에, 행사 시기마저 몰려 있으니, 출연료 상승은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10대와 20대가 열광하는 '아이돌' 가수들은 대학 축제가 열리는 5월 초중순이 되면,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 되고 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가수들의 통장을 가득 채워 준 돈의 출처가 세금이니 말이다.  

음반 시장의 불황도 행사 출연료 상승의 또다른 원인이다. 음반이 5만장만 팔려도 '대박' 소리를 듣는 상황이고, 디지털 음원 판매는 중개업자들(음원 사이트나 통신회사)에게 수수료를 떼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는 상황이다 보니, 기획사나 가수들은 행사 출연료 상승을 통해, 수익을 늘려야만 했다. 결국, 기획사들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손에 쥔 '과점적 지위'를 이용, 행사 출연료의 가파른 상승을 부추겨 왔다.

행사 출연료의 상승은 최근들어 '개나 소나 가수되기'의 원인이 됐다. 돈을 벌려면 행사에 출연해야 하고, 행사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노래가 필요하다. 따라서, 인기가 좀 있는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변신'이 아니라 '겸업' 또는 '부업'의 개념으로 행사용 가수의 길을 모색한다. 게다가, 요즘은 '디지털 싱글'이라는 게 있어서, 저렴한 비용으로도 앨범 제작이 가능한 시대가 아닌가? 노래를 못하면 기계음으로 떡칠하고, 무대에서는 금붕어 연기만 잘하면 그만이다. 행사철에 시속 180km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다보면, 어느덧 통장에는 만만치 않은 현금이 들어오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최근, 그룹에 소속된 가수들의 개인적인 '디지털 싱글' 발표 역시, 같은 맥락으로 봐도 무방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음반 시장에는 행사 출연료를 노린 '한탕 앨범'이 판을 친다. 그들에게 음악성을 묻느니, 차라리 쇠귀에 경을 읽는 게 낫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던가?  행사 출연료를 노리는 가수 아닌 가수들이 음악성으로 정면승부를 벌이는 진짜 가수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음반 시장에는 소위, 행사용 '한탕 음악'만이 판을 친다. 그렇게 음반 시장은 점 점 더 나락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처럼, 고액의 행사 출연료는 연예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출연료 문제로 연예인 개인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시스템의 문제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다수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면, 시장 자체의 붕괴가 이미 시작된 상황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일단, 나는 지역축제의 수를 줄이는 일이 그 시작이라고 믿는다. 만약, 내 의견에 동의한다면, 지금 당장, 당신이 사는 고장의 축제가 몇 개인지 부터 확인해 보길 권한다. 장담하건데, 깜짝 놀라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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